순암 안정복의 아기설중에서
順庵 安鼎福(1712~1791) 순암 안정복 의 순암집19 -아기설(啞器說) 중에서 -
내가 서울에 갔을 때 시장에서 어떤 그릇을 보았다, 위는 둥글고 아래는 평평하며 속은 비었고 꼭대기는 일자(一字)형태로 구멍이 뚫려 있었다.
못보던 것이라 마부에게
“ 이것이 무슨 그릇이냐?” 하고 물으니
“ 벙어리입니다 ” 입이 있으면서 말을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렇게 이름 붙였습니다. 아이들이 돈이 생기면 그속에 넣었다가 가득 찬 뒤에 부수고 꺼내니 돈을 함부로 쓰지 않고자 함입니다.“ 하였다.
곁에 있던 여관 주인이 말하였다.
이 그릇은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사람이 마땅히 말을 해야 할 때 말하지 않는 것은 벙어리와 다름 없다고 풍자하는 것이
그 하나요. 사람이 말을 해서는 않될 때 말을 하면 재앙을 겪게 되니 마땅히 벙어리처럼 있어야 한다고 경계하는 것이 또 하나입니다.
이제 만약 나무라는 것을 반성 한다면 장차 조정에서 명신이 될 것이며
그 경계하는 바를 알아 그것을 따른다면 당연히 처세하는데 통달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今若知其譏而反之 則將爲朝廷之名臣(금약지기기이반지 즉장위조정지명신)
知其戒而法之 則當爲處世之通人 (지기계이법지 즉 당위처세지통인)
안정복은 남인으로서 영조시대에 대표적인 사서로서 안정복의 [동사강목]은 주자의 대의 명분을 강조하는 입장에서 편년체 방식으로 단군 조선에서 고려 말까지 우리나리의 역사를 엄밀하게 고증하고 객관적으로 기술하여 고증사학의 학문적 토대를 구축했던 인물로 평가 받는 사람이다. 벼슬로는 목척 현감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