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삶

빌라델비아교회

내동 2015. 2. 27. 07:32

빌라델비아교회(열린 마음, 배반하지 않고 충성을 다하는 교회 .)

(요한 계시록 38)

 

빌라델비아 교회는 상업과 농업이 발달했으나 지진이 수시로 발생하는 위험 지역에 위치 했습니다.

성도 대부분은 사회적으로 힘없고 가난한 하층 이 였습니다.

하지만 믿음과 사랑이 충만해 유대인의 박해 속에서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충성된 교회였습니다.

교회의 위대함은 자원과 세력이 얼마나 되는지가 아니라, 성도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작고 약했지만 빌라델비아 교회는 핍박 앞에서도 신실함을 유지했읍니다.

변함없는 인내와 헌신은 지속적인 영적 성장과 영광을 보장합니다

예수님은 빌라델비아 교회에 가진 것을 굳게 잡으라 현재 명령형 시제로 말씀 하십니다.

어제의 믿음으로 오늘을 살 수 없습니다.

믿음은 언제나 현재형으로 계속해서 성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은혜를 간구하며 지속적으로 말씀을 붙드는 사람이

시험을 이길수 있습니다.

승리자는 하나님나라의 주역이 되며 하나님의 칭찬과 인정을 받습니다. 새 예루살렘과 주님의 이름을 소유하는 영광을 얻습니다.

 

칭찬 : 믿음 안에서 견뎠다.

비판 : 없음

가르침 : 믿음을 지키라

약속 :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장소, 새이름, 새 예루살렘

 

묵상 : 예수님이 빌라델비아 교회를 높이 평가한 이유는 무엇인가?

적용 : 1. 가진 것, 할 줄 아는 것이 별로 없다고 뒤로 물러나 있는 일, 또는 어물쩍한 태도를 보이는 문제는 무엇인가?

2.공동체와 나는 지금 무엇을 굳게 붙잡아야 할까?





31() 라오디게아 교회. (열정)

요한계시록316: (열정, 사랑과 열정이 넘치는 교회)

 

자신의 본 모습과 부족함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면, 잘못된 점을 개선하기 어렵고 온전함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만족은 단순한 오해와 착각을 넘어 심각한 죄악이 될 수 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외적으로 매우 부유하고 평안한 교회였습니다.

질 좋은 양모를 생산해 부를 축적했고, 다른 지역에 비해 박해도 별로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라오디게아 교회는 나태와 안일에 빠져 영적 갈급함을 잃어 버렸습니다.

신앙에서 중간지대는 없습니다.

치열한 자기 성찰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여건이라도 최악의 위기를 맞을 수 있습니다. 특히 믿음이 없으면서 믿음이 있다고 자처하며 교만에 빠진 사람은 주님이 내치실 만큼 가증스럽게 여기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자기기만을 버리고 자신을 직시해야 변화가 시작 됩니다.

 

진정한 회복은 자신의 사고방식과 고집을 내려놓고, 예수님 앞에 빈 마음으로 서는 데서 시작됩니다.

주님의 은혜가 있어야 완악하고 강퍅한 심령이 근본적으로 새롭게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만족에 빠진 라오디게아 교회의 문 밖에 서서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문만 두드리십니다.

교회가 주님의 음성을 듣고 마음 문을 활짝 연다면 다시 예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풍성한 삶을 누릴 것입니다.

그럴 때 미지근하던 교회가 정금 같은 믿음을 바탕으로 정체성과 영적 분별력을 회복하고 뜨거운 열정으로 헌신하며 충성하는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교회개혁은 예수님과의 관계회복에서 부터 시작합니다.


칭찬 : 없음

비판: 무괸심했다

가르침: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약속 : 예수의 보좌에 함께 앉음.



적용 : 1.내 모습가운데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은 모습은 무엇일까?

2.예수님과 관계회복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




32() 성례 (예수님의 살과 피)

(마태복음 2626)

성찬식은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자리입니다.

 

예수님이 마지막 만찬의 의미를 설명해 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 축사하신후에 주시면서

이것은 나의 몸이다라고 하셨고, 포도주가 든 잔을 주시면서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다라고 하셨습니다.

양의 피로 맺어진 옛 언약은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맺어질 새 언약을 미리 보여주는 것 이였습니다.

참된 구원은 양의 피가 아니라 예수님의 피로 이루어 집니다.

동물의 피는 죄 씻음을 상징할 뿐이지 인간의 죄를 씻을수 없습니다.

타락한 양심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행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피는 인간의 죄를 사실적으로 씻어서 인간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며,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온전히 행할 수 있게 합니다.

 

(9:14)

하물며 영원한 성령을 힘입어 자기 몸을 흠없는 제물로 삼아 하나님께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야 말로 더욱더 우리들의 양심을 깨끗하게 해서

우리로 하여금 죽은 행실에서 떠나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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